마운트앤블레이드 시리즈를 오래 즐겨온 사람이라면, 배너로드를 처음 시작할 때 전작 워밴드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 필자도 꽤 높은 기대를 품고 배너로드를 실행했으나, 초반부부터 전작의 아류작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 실망이 컸다. 워밴드가 확실하게 구분해 둔 각 팩션별 특징(예를 들어 스와디아 기병이나 로독 노병 등)이 배너로드에서는 희미해진 느낌이다. 간단히 말해 기병, 노병, 보병이 두드러질 만한 강점을 제대로 가지지 못했고, 그 결과 게임 진행 중 전투 전략이나 육성 방식에서도 통일감이 부족했다. 방대한 세계관을 지녔음에도 이렇게 팩션별 개성이 희미해지니, 몰입감이 다소 떨어져 아쉬움이 남았다.



[세계관의 불안정성과 몰입 저하]
마운트앤블레이드는 캐릭터를 만들 때부터 하나의 세계가 새롭게 생성되는 듯한 기분을 준다. 농부들이 작물을 생산하고, 상인들이 무역을 하며, 영주들은 순찰을 도는 모습이 중세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줬다. 그러나 배너로드에서는 극초반부터 도시 간 경제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지거나, 영주가 도적에게 쫓겨다니는 장면이 너무 자주 연출돼 안정감이 크게 떨어졌다. 일관성보다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이 연속되는 느낌이라, 한편으로는 역동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질서한 인상을 준다. 너무 빠른 템포로 세계가 혼란에 빠지는 상황이 지속되어, 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중세 세계관에 녹아드는 데 장애물이 됐다.




[큰 틀 변화가 부족한 점]
전작과 비교했을 때 그래픽이 조금 더 나아졌고 상호작용이 약간 늘어났다는 점은 장점이라 볼 수 있다. 다만 게임의 주요 플롯이나 시스템 전반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여전히 워밴드의 기본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전투 방식을 비롯해 마을에서의 생활, 영지 운영 등 전체적인 구성이 비슷해, 플레이를 계속할수록 그냥 워밴드가 조금 향상된 버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심지어 배너로드가 나온 시점에서는 수많은 중세풍 게임들이 이미 독자적인 시스템을 선보이고 있어, 배너로드가 획기적인 신작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느낌이다.




[아쉬움 속에도 돋보이는 부분과 종합 평가]
배너로드에도 분명 발전된 부분이 있다. 길을 지나는 주민들의 세밀한 움직임, 중세 풍경을 상세하게 묘사하려는 시도, 아이나 동물들이 게임 세계 속에서 살아 숨 쉰다는 점 등은 제작진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다만 긴 세월 동안 개발된 만큼, 플레이어들은 더욱 혁신적인 전투 연출이나 디테일을 기대했을 것이다. 실제로 성을 공격하는 장면에서 고전을 치르거나 다채로운 전술이 펼쳐지리라는 기대와 달리, 결국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 반복된다는 점이 실망으로 다가왔다. 결국 배너로드는 마운트앤블레이드라는 명작의 후속작으로서 중간 정도의 재미를 선사하지만, 그 이상을 기대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중세풍 오픈월드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게임이 될 수 있으나, 장기간 기다려온 팬들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더 크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