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는 짧았다. 운동을 마친 뒤, 언제나처럼 익숙하게 수건을 들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땀이 식고, 정신이 맑아지는 그 찰나의 순간 뒤에 돌아온 것은 예상하지 못한 공백이었다. 신발이 사라져 있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운동화 같았지만, 나에겐 특별했다. 생일을 맞아 누나가 직접 골라 선물해준, 말 그대로 ‘마음이 담긴 물건’이었다. 신발을 잃은 게 아니라, 그 마음을 도둑맞은 기분이 들었다.
CCTV 속 갈색 머리, 그리고 흔적 없는 도망
당황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곧장 헬스장 카운터로 달려가 CCTV 확인을 요청했다. 직원이 함께 화면을 돌려보는 동안,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결국 화면 속 한 인물이 포착됐다. 마스크를 쓴 갈색 머리의 청소년쯤 되어 보이는 인물. 익숙한 내 신발을 슬쩍 집어넣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헬스장을 빠져나갔다. 경찰에 곧바로 신고했고, 관계자에게 자료를 넘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주변 차량도 없고, 근처에 블랙박스도 없어 잡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실낱같은 희망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역시 그냥 넘어가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 즈음, 다시 경찰의 연락이 왔다. 이번엔 분위기가 달랐다. “확인할 것이 있다”며 경찰서 방문을 요청했다.
우연한 연결, 예기치 못한 전개
사건의 실마리는 전혀 다른 곳에서 풀렸다. 경찰이 동네 마트를 털던 청소년 무리를 검거했는데, 그들 소지품에서 신고된 도난 물품 다수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거미줄처럼 흩어져 있던 사건들이, 하나의 중심으로 엮이기 시작했다.
경찰서에 도착하자, 내 앞엔 익숙한 장면이 펼쳐졌다. 책상 위에 여러 개의 도난품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사이에 내 신발이 놓여 있었다. 내 손에 익숙한 굴곡, 색감, 질감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이상한 울컥함이 올라왔다. "아, 저거 내 거예요."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게 울렸다.
평범한 얼굴들, 그리고 묘한 감정
범인들은 총 세 명. 경찰이 보여준 CCTV 영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갈색 머리’도 그 안에 있었다. 그런데 놀라웠던 건 그들의 ‘평범한 얼굴’이었다. 흔히 말하는 양아치처럼도, 반항적인 모습처럼도 보이지 않았다. 지극히 일상적인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볼 법한, 어디서든 스쳐 지나갈 수 있을 법한 얼굴들.
그러나 그들이 저지른 건 ‘특수절도’였다. 마트 카운터 털이, 헬스장 물품 절도 등 범행은 생각보다 조직적이었고, 반복적이었다. 경찰은 단순 장난이 아닌 ‘상습 범죄’로 판단했고, 법적 조치로 이어졌다.
조사를 마친 후, 그들의 부모들이 경찰서로 찾아왔다. 피해자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던 모습은 이상하게도 씁쓸했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묘한 감정이 남았다. ‘이게, 우리가 사는 현실이구나.’ 어딘가에서 삐끗한 선택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 낯설게 만든다.
끝맺음은 법대로, 마음은 복잡하게
결국 내 선택은 단호했다. 신발은 다행히도 멀쩡했고, 나는 그것을 들고 조용히 말했다. “법대로 처리해주세요.” 그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눈물 흘리며 사과하는 보호자, 고개를 푹 숙인 아이들, 그리고 그 사이에 서 있는 나. 이 모든 장면은 무겁고도 현실적이었다. 정의감과 연민, 단호함과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채로,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어쩌면 신발 하나가 만든 이 이야기는 아주 작고, 또 사소할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이런 작고도 확실한 경험이 우리 일상에 경계와 균형을 다시 만들어준다. 무너진 신뢰를 복원하는 건 어려워도, 잘못에 대한 책임은 분명하게 짚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평범한 하루 속 작은 사건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주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