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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축별 사용 후기: 청축, 갈축, 광축 그리고 적축을 향한 고민 (기계식 키보드 비교 체험기)

손끝으로 느끼는 감각의 시작, 청축
기계식 키보드를 처음 접한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은 아마 ‘청축’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청축은 말 그대로 ‘기계식 키보드’라는 인상을 가장 직관적으로 전달해주는 축이다. 눌렀을 때 또각거리는 소리, 손가락을 튕겨내는 듯한 반발력은 타자에 리듬을 더해준다. 누군가가 내 타자 소리만 듣고도 내가 어떤 키보드를 쓰는지 알아챌 정도로, 이 축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감각도 오래 가지 않았다. 점핑 푸쉬업 도중 손목을 다친 이후부터는 청축이 주는 반발력이 부담으로 느껴졌다. 처음엔 이게 내가 약해졌다는 의미인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내 몸은 점점 더 부드러운 타건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키보드

 




청축과 적축 사이, 그 애매하지만 편안한 균형 ― 갈축
그렇게 자연스럽게 넘어간 게 갈축이었다. 청축의 명확한 클릭감과 적축의 부드러운 흐름 사이에 위치한, 중간자의 포지션. 갈축은 확실히 절충형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눌렀을 때 손가락에 느껴지는 약간의 저항감은 타이핑의 재미를 남겨두었고, 동시에 청축처럼 소리가 크지 않아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손목에 무리가 덜 가는 게 컸다. 힘을 주지 않아도 입력이 되고,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그 키감이 하루의 타이핑을 무난하게 책임져준다. 현재도 갈축을 사용 중이지만, 그 균형이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너무 안정적인 것이 때로는 감각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기도 하니까.


키보드 레이아웃(참고용)



이름만큼 기대했던 축, 그러나 아쉬웠던 광축
‘광’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빠르다는 이미지, 빛처럼 즉각적인 반응이라는 기대. 그래서 광축을 샀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청축과 거의 흡사한 키감, 빠른 반응 속도는 체감조차 어려웠다. 단지 구조상 더 적은 접점을 갖는다는 설명은 있었지만, 손끝은 거기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청축과 마찬가지로, 광축도 손목에 피로를 누적시켰다. 반복되는 타건 속에서 손목이 천천히 굳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빠름을 원했던 손끝은 결국 편안함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키보드는 속도보다 ‘반복에 대한 내성이 중요한 기계’라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다양한 키보드의 모습들



아직 만나지 못한 감각, 적축
지금의 고민은 적축이다. 소문으로만 들어온 부드러운 키감, 마치 물 흐르듯 타건이 이어진다는 그 느낌이 궁금하다. 청축이 청량한 강물 같았다면, 갈축은 잔잔한 호수였다. 그렇다면 적축은 무음의 실내처럼, 조용하지만 깊은 감각을 전해줄 수 있을까. 손끝에 힘을 거의 주지 않아도 되는 타건, 조용한 환경 속에서도 부담 없이 쓸 수 있다는 말은 마치 지금의 나에게 딱 맞는 조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아직 직접 써보지 못했다. 그래서 고민은 길어진다. 손목의 피로도를 낮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도 타이핑의 즐거움은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키보드란 단지 입력 장치가 아니라, 매일 손끝으로 감각을 부딪히는 ‘작은 예술’이다. 그 예술에 어울리는 나만의 도구를 찾는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과연 당신의 손끝에 가장 잘 맞는 감각은 무엇인가요.